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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다양한’ 우리들
 
인간의 얼굴은 그 무엇 보다 유창한 기호이자 미디어이다.
누군가와 대면했을 때, 우리들은 그 사람의 얼굴과 그 표정에서부터 그들이 가지고 있는 표면적혹은 내면적인 메시지를 순간적으로 읽고자 한다. 그것은 한 집단 속에서의 삶을 선택 한 종족인 인간에게 있어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메시지 속에는 자신의 얼굴이 나타낸 메시지에 대한 반응도 포함되어 있다. 타인의 얼굴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정 짓기 위한 거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타인이 짓는 표정에 매우 깊은 흥미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타인의 얼굴을 읽어야 하는 필요성에서, 이 세상엔 그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관상가나 학술적 심리학자 등으로, 그들은 분석과 동시에 고객의 요청에 따라 표정을 짓는 법도 지도해 준다. 게다가 계속해서 진화하는 화장과 성형기술의 힘을 빌려 인간의 얼굴은 그야말로 완벽한 페르소나(가면) 을 얻게 된다. 단, 그 가면을 만들기 전에 요구되는 것은 더욱 완벽한 포트레이트 사진일 것이다.
사진의 역사상 오늘날과 같이 많은 포트레이트가 찍히는 시대는 없었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이곳에 작품으로서 전시되어 있는 작품도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 속의 나’ 의 전시장을 한번 돌아 보면, 관중은 익숙하지 않은 괴리라고 생각되는, 혹은 압도되는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단, 그 어떤 작품에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있는 사진과 무관한 것은 없고, 반드시 어딘 가에 접점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전시의 4부로 나누어진 구성 (제1부 ‘생의 증명’, 제2부 ‘가족사진’, 제3부 ‘미의 기준’ 제4부 ‘다층화와 공유’) 또한 그 경험에 준하여 나누어져 있다.

먼저 제1부 ‘생의 증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일종의 증명사진, 기록 사진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속성을 밝히고, 역으로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서 관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한편, 사진에는 사회적인 페르소나에서 돌출되어 나오는 인간다운 생생함이 있고, 그 부분에 우리는 시선을 빼앗길 것이다. 전시작품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숨겨진,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몸에서 발산되는 강력한 메시지를 포착하고 있다.

제2부 ‘가족사진’에서는 가까운 사람들의 표정을 사진 작가가 찍은 것도 있고, 다른 누가 찍은 사진을 재해석 한 작품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가족사진의 절대성이 작품의 바탕에 있다. 그것은 누구나 이해하고 있을 것 이다. 왜냐하면 그 절대성이 한 사람을 깊은 부분에서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이야기와 같이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절대성은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이다. 그것을 직시하는 사진은 우리의 가족관을 세차게 흔들 것이다.

제3부 ‘미의 기준’은 연출 되거나 수정을 전제로 한 포토레이트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소원이자 미의식의 투영이고, 예를 들어 SNS상에서도 굉장히 자주 보이는 것이다. 이 종류의 포트레이트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큰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미의 기준이라는 것은, 사회적 규범의 내면화를 뜻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미의 가치관도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미의 기준도 계속해서 바뀌어 져야만 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에 가혹한 스트레스를 동반하고, 경우에 따라 자기자신을 소외시키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 파트에서 전시될 작품은 그 규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새로운 미를 얻고자 하는 과감한 시도이다.

제4부 ‘다층화와 공유’는 사진 속에서 변신이 가능하게 된 얼굴을 둘러싼 현대의 포트레이트를 이야기한다. 그 전형에 대해서, 예를 들어 코스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사진에서 알 수 있는 점은 많다. 예를 들어 그들이 2차원의 캐릭터로 돋보일수록 그들의 실체는 그 뒤 쪽으로 숨어버리는 일이 있다. 말하자면 그들 자신의 신체성을 포기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반대로 그들은 어떤 완전히 기호화 된 사회성을 얻는 것이 된다. 본 전시회에서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그러한 존재로의 욕구를 가시화 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이 단락에 쓰여진 것과 같이 포트레이트의 방식은 크게 변화하였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원동력은 사진영상의 데이터화와 통신수단의 고도화에 의해서 이다. 이 정보환경의 확대는 메인전의 ‘아시안 익스프레스’와 공통된, 전시를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단, ‘사진 속의 나’전에서는 그것이 큰 사회적 풍경이 아닌, 때때로 놓칠 수 있는 개인의 존재에 어느 정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가를 문제로 삼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포트레이트는 더욱 개인적인 것으로서 찍히는 것과 동시에 매우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조적인 모순이자 때로는 개인의 정체성을 갈라놓을 수도 있다. 적어도 변신해야 할 많은 가면을 필요로 하는 것은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타인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 대면서 얼굴에서 나타나는 메시지를 마지막까지 확인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한 종족으로서의 인간에 있어서 본능적인 행동인 것이다.
 
큐레이터 토리하라 마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