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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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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
계획에 없었다. 내 미래에 대한 계획은 많았지만, 그것들이 한 순간에 휘이 날아가도 된다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고집이 꺾였을 때, 난 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다 놓아버렸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왔다. 10여 년 만에 불현듯 돌아온 나의 고향인 이 도시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어떻게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나의 현실을 외면하려고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시도도 부질없었다. 결국, 힘겹게 외면해오던 나의 가장 분명한 현실인 이 서울이라는 땅에 혼자 덩그라니 놓여진 것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느 날, 카메라만 들고, 막연히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길을 잃자.

길을 잃은 곳에서 발견하는 세상이 내게 보여주는 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즉흥적으로 마음이 이끌리는 길로 하염없이 걸었다. 나의 의지로 목적지도 없이 길을 잃기 위해 걷는 일은 내 인생에 없던 일이었다.

미로 속으로 더 깊히 들어갈 수록, 나는 내안의 가득했던 생각들을 잊어갔다. 그저 순간 순간 눈 앞에 나타난 풍경과 사람들만이 내 세상을 채워갔다. 그것이 내 현실이 되어있었고, 난 그 흔적들을 계속해서 주워담았다.

삶은 쉬지도 않고 흘러가기에, 순간에 머무를 여유가 없다고 느껴진다. 그저 막연히 다른 현실을 꿈꾸며 살기에도 버겁고, 그렇게 지금을 놓친다. 그러던 내가 길을 잃고, 어느 이름 모를 동네에서 발견한 것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가는, 별 것 아닌 것에 보내는 나의 미소였다.
작가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