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사진작가 에릭 슈트렐로가 카이로를 처음 여행한 때는 2008년이 었다. 중동이나 극동아시아의 대도시를 처음으로 방문한 대다수의 유럽여행자들이 그러하듯, 작가 역시도 2400만명의 인구를 자랑 하는 대도시가 쏟아내는 온갖 감각을 자극하는 인상에 휩싸였다.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한 도시 구조와 디테일 그리고 격동하는 도시 의 모습에 압도당한 채 그는 소박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연작 <카이로에 가까이(Close to Cairo)>를 구상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도시에서 받은 인상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2009년의 방문에서는 건축적 규제라고는 존재하 지 않는 듯 날로 확장되는 이집트 수도의 주거공간과 그와 더불어 가시화된 카이로의 사회적 삶에 작가는 특히 주목했다. 좁은 공간 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과 도시의 진동이 야기한 혼 란스러운 역동성을 살려 표현하고 싶었던 슈트렐로는 고층 건물들을 개별적으로 사진에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바둑판 구도의 수직선을 따라 정확하게 위에서 아래로, 또 아래에서 위로 작은 부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샅샅이 훑으며 20분 가까이 사진을 찍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 전시《NEXT IMAGE – 되돌아본 미래》 의 중심작 <미단 알 갈라( )>는 260점의 사진들을 합친 작 품이다. 감상자가 좌측 상단부에 묘사된 – 등장인물 간의 상호작용 이나자연스러운빛의묘사와같은–상황과동일한모티프를우측 하단에서 발견하는 순간, 그 상황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된다. 그리 고 그 과거는 자신의 미래와 시각적으로 동시에 마주한다. 2013년 델리에서 제작된 <델리(???? ? ????)>와 같이, 슈트렐로의 이후 작업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오롯이 초점을 맞췄다. 그렇지만 시간 을 모자이크처럼 기록하는 작업방식이 이전과 동일하다 보니 새로 운 주제가 덜 부각된다. 외부의 영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 이하게도 사진 속 풍경은 연출된 장면처럼 보인다. 하나의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했지만, 작품의 왼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오른편에서는 이미 과거에 속하는 건 여전하다.
Bernhard Draz (베른하르트 드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