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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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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
나는 이번 작업에서 두 개의 주제를 각각 세 개의 이미지가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Triptych 형식으로 제시한다. 첫 번째 작업 ‘ThereAfter’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이하게 변화되는 대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두 번째 작업 ‘Same Walls’는 동일한 공간에서 주체의 시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대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개의 작업은 모두 오래되어 소멸되어 가고 있는 서울 도심의 을지로 인근에서 촬영되었다.

‘ThereAfter’ 작업은 이와 같이 소멸되어가고 있는 장소에서 부족한 생명의 기운을 채워주던 길거리 식물을 주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불과 며칠 전까지 남아있던 생명의 흔적들이 극적으로 사그라져 갔다. 일부는 외부환경의 변화로 원치 않는 소멸을 맞이한 개체도 있었고 소수이지만 꿋꿋하게 버티는 개체도 있었다. 나는 약 한달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이들의 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돌아와 다시 살아난 개체와 살아나지 못한 개체의 모습도 추적하여 기록하였다. 각 작품에서 좌측은 늦가을, 중앙은 한겨울, 우측은 이듬해 봄의 모습이다. 세 개의 이미지 비교를 위해서 똑 같은 앵글로 똑 같은 배경이 담기도록 세심하게 촬영하였다. 나는 이러한 변화의 모습이 인간의 삶을 알레고리 적으로 반영한다고 보았다.

‘Same Walls’ 작업은 동일한 장소의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이 곳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이 수십 년간 바라보았을 똑 같은 벽을 주목하면서 시작되었다. 방문자의 시점으로는 좁은 골목길 밖에 보이지 않지만 수년간 꽉 막힌 전망의 집에서 살아왔던 나에게는 무엇보다 그 공간의 전망에 신경이 쓰였고 조망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골목길에 위치한 하나의 점포 앞에서 방문자의 시점으로 골목길을 촬영하였고 시점을 90도로 돌려 해당 점포를 마주보고 있는 벽을 촬영하였으며 다시 시점을 반대로 90도 돌려 해당 점포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이후 세 개의 이미지를 ‘ㄷ’자로 배치하여 내가 바라보았던 현장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류는 원래 유목민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광활한 벌판에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길러왔을 터이다. 그러나 인류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한정된 공간에 건물을 많이 지었고 조망의 범위는 계속해서 좁아졌다. 내가 전망 없는 집으로 이사온 후 마음까지 좁아짐을 느낀 걸 보니 조망권의 범위만큼 인간이 느끼는 인식의 폭도 좁아지나 싶다.
작가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