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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잔상을 남기는 풍경들이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잠재되어 있어서 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한한 정신성과 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힘이 나의 영혼에 남긴 그 느낌은 내 안에서 어떤 의미와 형상을 생성하곤 한다. 그것은 상상한다기보다 상상되는 것이다.
밤과 낮이 섞이고 빛과 어둠이 부드럽게 엉키는 시간이 오면, 깊고 그윽한 공간의 에너지가 서서히 드러낸다. 그러면 나는 그 신비로운 순간의 에너지를 필름에 가득 퍼 올린다. 그리고 서서히 어둠이 내리면 흙탕물이 서서히 가라앉듯이 내 안의 감각과 분별의 소음이 사그라든다. 세상이 완전한 어둠에 잠기고 내 안과 밖의 에너지가 조우하면, 나는 다시 셔터를 연다. 암흑 속에서 플래시가 번쩍, 하고 터질 때마다 하나의 나비가 탄생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수십 수백의 에너지가 나비가 되어 필름에 각인된다.
동양에서 나비는 영혼을 상징한다. 나비는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존재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우연찮게도 나비와 같은 소리를 지닌, ‘Nabi’는 히브리어로 선지자를 뜻한다. 그런 연유로 나는 그 동안 다양한 형상과 기호였던 빛을 나비로 응축한 <Nabi> 시리즈를 만들었고, 국내와 세계 각지를 다니며 작업하고 있다.
제주에서 생명나무 작업을 할 때, 백록담이 신선이 타고 다니던 흰 사슴 ‘白鹿’이 노니는 곳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을 들었다. 그 때 처음으로 영물인 흰 사슴의 이미지가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왔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하나의 조상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고, 생명나무(The tree of Life)의 뿌리에 해당하는 그 존재를 루카(LUCA, last universal commom ancestor)로 명명했다. 오랫동안 생명나무(The tree of Life)를 주제로 작업해온 나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생명의 기원인 루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생물학자들은 유전자를 추적했고,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에 매진했다. 그들이 밝혀낸 놀라운 사실들을 지켜보던 나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생명의 기원과 그 폭발적 분화의 경이로운 순간을 나무와 사슴과 빛의 중첩과 얽힘과 도약으로 시각화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LUCA>다.
이정록 작가는 시각적 경험 이면에 숨겨진 깊고 근본적인 에너지를 사진으로 재현한다. 작가는 풍경을 담아낸 필름 위에, 플래시의 순간광을 중첩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체험한 미지의 힘을 신선하고 대담하게 그려 넣는다. 대자연에서의 경이로운 체험을 고스란히 시각화한 그의 작업은 신비로운 에너지로 가득 차 있어 보는 이의 감각과 영혼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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