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차진현은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 변곡점인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후기 산업화라는 각기 분절된 시대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을 전시 속에서 재맥락화 하여 생체권력이라는 거대담론의 얼개가 어떻게 일상에 관여하게 되는지를 그리게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전신 포트레이트로 이루어진 108인의 초상은, 우생론적 피의 순수성 보호를 모토로 내세운 생체권력(제국주의/전체주의)이 죽음의 장소에 배치했던 육체의 현존적인 이미지를 통해, 그들의 신체를 감싸는 암흑과도 같은 시간(기억)의 내면을 가리킨다. 반면 1990년대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남해안의 해안가 풍경을 덮어버린 산업단지를 배경으로 작업 한 인물/풍경사진(남해안 프로젝트)과, 오늘날 관광지역화 되어 버린 남북접경의 일상을 현시하는 사진들(Post- Border Line)은, 상이한 지역적/역사적 배경을 갖는 장소들에 포괄적으로 작용하는 자본의 논리를 지각케 한다. 다시 말해 차진현이 남해안과 남북접경 일대에서 포착한 일상의 흔적들은, 과거 법제화 된 행정절차나 규율로서 하향식으로 확산하던 생체권력의 메커니즘이 오늘날 개체와 사회체의 번영을 통한 행복추구의 권리 절차를 매개로 폭넓게 확산하는 양상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련의 작업은 커져가는 우리 사회의 생명에 대한 권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생체의 생명력과 장소의 기억이 지속적으로 증발되어 가는 시대적 패러독스에 대한 보고이자, 그러한 아이러니에 대해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라고 하겠다. 결국 제국-일본의 죽음의 정치학에 대한 기억과, 생명의 권리와 인간 소외의 확산이라는 양가적 현실의 흔적이 수수께끼처럼 서로를 비추는 전시공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각기 다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포괄적으로 부합하면서 삶의 미시적인 영역에까지 퍼져나가는 메커니즘의 실체를 반추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