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된 의제-37.5도 아래
Missing Agenda - Even Below 37.5
전례가 없던 팬데믹 상황입니다. 37.5는 위협적인 숫자가 되었습니다. 공공적 차단을 의미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코비드 19 바이러스가 그렇게 각인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바이러스는 인간과 ‘적대적 공생관계(antagonistic cooperation)’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37.5도 아래, 곧 의학적으로는 표준(standard)이지만, 우리가 삶의 방식, 문명의 노선을 위탁해온 ‘논란의 여지가 많은 표준(A controversial standard)’에 대해 전향적인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8회 대구사진비엔날레는 ‘누락된 의제(37.5 아래)/Missing Agenda(Even Below 37.5)’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것들을 다시 논의의 테이블 위로 초대하고, 정중하게 빼앗겼던 발언권을 되돌려주는 시도가 이 상황을 넘어서는 것에 더해 포스트 팬데믹(Post Pandemic) 시대를 준비하는 길과도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누락된 의제-37.5도 아래
심상용(제8회 대구 비엔날레 예술감독/서울대학교 미술관장)
왜 ‘누락된 의제’를 누락하는가?
현 코비드 19 팬데믹 사태는 이 시대와 국제사회가 ‘정상’으로 규정해온 것들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향을 촉구하는 징후적 사건이다. 2020년, 바이러스가 현 문명의 시스템에 잠정적 중단을 종용했을 때, 그 오만과 낙관주의를 잠시 주춤거리게 만들었을 때, 그간 누락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의제들이 다시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극단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 되살아난 인종차별, 전쟁과 테러, 국경 사이에 낀 난민들, 약탈당한 생태계로부터 들려오는 그 절규가 《누락된 의제-37.5 아래》(Missing Agenda-Even Below 37.5)의 큐레이터십을 여기까지 견인한 이끈 장본이었다.
37.5라는 수치는 의학적 ‘정상’을 가름하는 기준인 체온 37.5°C에서 도래했다. 하지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진정한 위기는 바이러스의 공격이 면역반응을 일으키기 이전, 그러니까 계몽된 근대에 대한 기대에 한껏 들떠 있던 때부터, 잠재적 증오와 졸고 있던 야만성이 깨어나기 이전부터, 약탈과 풍요의 쌍두마차가 역사의 진보를 담보할 거라 맹신했던 때부터 이미 예견된 파국의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이러스가 이 속악한 문명을 잠정 중단시키기로 마음먹기 이전에, 위기는 벌서 일상의 턱밑까지 다가와 숨통을 죄고 있었던 것이다.
2021년, 이 문명이 지속적으로 누락해온 의제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이러스다. 이 시대의 예술과 문화가 진실의 예리한 모서리들을 공굴리고, 비참성의 근원에 무감각하고, 그것을 주도하는 헤게모니적 질서에 편승하는 동안, 정작 그 목불견의 시간을 정지시킨 것도 바이러스였다. 지난 몇 년 사이, 급진적인 변화가 감지되었다. 환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비엔날레와 박람회를 비롯해 세계적인 블록버스터급 전시 자체를 폐기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작금의 팬데믹 사태가 오염물질 배출량을 현저하게 감소시켰으니, 그저 빈말인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스위스, 프랑스, 독일의 미술관들이 이 제안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독일은 2019년부터 그린 뉴딜정책 ‘Wir alle fur 1.5’C’(We all support 1.5C) 의 일환으로 미술관 전시를 줄이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30년까지 30%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계획의 일환으로서다. 예술의 인간적, 사회적 효용성이 의구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엔날레나 블록버스터 전시 자체가 이미 현상일 뿐 아니기에, 해석을 요하는 접근이기는 하다. (중략)
예술감독
심상용
큐레이터
정훈
어소시에이터 큐레이터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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