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만물이 창조된 이래 시작된 내러티브의 결정체들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승화되어 새로운 이데올로기들을 해산(解産)해왔고, 상상의 산물들을 토로하며 저항의 즐거움으로부터 존재를 의미화해왔다. 마치 기존(旣存)과 기성(旣成)을 저항해야함으로써 끊임없이 변태(變態)하고, 결국은 성충으로의 우화(羽化)를 이루어내는 것 같이, 마주하는 현실로부터 이상을 향한 거듭남은 우리 스스로의 의미를 정의해온 생존방식이다. 인류는 상상의 산물들로부터 완벽한 변신을 이루어 오고 있고, 예술이라는 작품으로 기록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새로운 변신으로부터의 질서, 미(美), 정신을 선보이는 시대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다.
권록환
권록환(1993, 대구)은 간척 사업으로 이루어진 신도시, 조선소와 같은 개인의 힘으로 실현 불가능한 국가나 도시 규모의 산업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경험이 작업에 영향을 주었다. 거제와 광명의 유사성과 현대 도시의 속성을 탐구한
국가 규모 산업과 그에 따른 부산물이 자리한 지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전작인 The summit (2018) 사진 연작을 진행하면서 거대한 철도 역사의 등장 이후 급격한 도시개발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광명역을 기준으로 인프라가 형성되고 자원과 인력이 유입되는 점으로 광명역이 도시를 움직이는 동력 기관처럼 작동하는 한편, 주변부를 채운 높은 밀도의 고층 건축물과 빠른 시간의 감각은 초고속 성장을 목표로 발전해 온 한국의 축소판처럼 다가왔다. Black wave(2019-)는 경부고속도로와 동일한 동선에 놓인 송유관을 따라 촬영한 작업으로, 한국 산업의 지형도를 그리겠다는 의지와에 닿지 못한 채 부유한다. 한 세기 이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장소에 머물러 퇴적된 시간과 장소의 기억을 가늠하며 시대를 읽어나간다.
권해일
작가는 대학을 진학하면서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다. 1995년 대학의 흑백사진 동아리를 통해 사진을 시작하였고, 사진교육을 주제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7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여러 개인전과 전주국제사진제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 하였다. 작가는 기 드보르(Guy Debord)의 현대사회의 자본과 이미지에 잠식된 ‘스펙터클 사회 La Societe du Spectacle’ 와 마크 오제(Marc Auge)가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말하는 ‘비장소 non-places’적 장소와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동조한다. 주거 문화와 환경, 그리고 도시와 사람, 도시 환경과 개인의 삶의 연결성 등에 관한 주제에 관심이 높다.
산언덕 판자촌을 밀어버리더니, 부촌의 이름을 가져다가 악보의 올림표까지 붙인 아파트가 들어섰다. 강 건너 번쩍이는 동네와 가깝다고 웃돈이 붙길래 나는 경쟁에서 질 것 같은 기분에 기어이 한 모서리를 사고 말았다.
(중략)
전선들은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뒤엉켜 있고, 가느다란 철골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가 연결된 후 걸쭉한 시멘트로 덮인다. 어제의 바닥이 오늘은 천장으로 변하고, 매끈했던 면에는 하루 만에 새로운 돌기가 솟아나 있다. 아무런 규칙 없이 웃자라듯 보이지만 풀어 볼 엄두도 못 낼 복잡한 질서에 매몰되어 보지 못한다. 눈을 뜨고 보고 있지만, 세상은 나와 우리를 어떻게 교란시키는가? 나는 불안과 구토를 느낀다. 스펙터클의 과정도 그 결과만큼이나 스펙터클하다는 것! 내가 느낀 불안의 구토물이 이 사진들이다.
김미영
김미영은 사진과 조형, 설치,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사진 매체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한다. 시간의 물질성과 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기억의 특수성에서 잃어버린 시간이 재작동되는 감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시간과 기억을 알레고리와 분석적인 방식으로 탐색하고,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결과물들로 기억의 저장 장치를 가동한다. 이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들을 감각적으로 공간에 설치하여 불가시적인 대상을 물리적으로 전환하고 다시 심리적으로 전시되는 ‘사진-설치’ 실험을 한다. 최근에는 제도권 내의 시간통제와 정치적 통제와 같은 공동체의 통제에 대해 시선을 확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몸과 비인지적 통제의 관계성에 대해서도 작업하고 있다.
김미영은 주 작업 매체인 사진에 실생활에서 수집한 오브제나 이미지, 영상 등을 더하여 감각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설치작업을 전개해왔다. 특히 최근 몇 년 간의 작업들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과 이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작가는 때로는 시간이 경과한 후 남겨진 기억을 다루려고 시도하며, 때로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개인들에 의해 해석되는 현상을 포착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탐구해 왔다. 무형의 시간이라는 대상이 작가에 의해 화면에 담기고, 그 평면의 이미지가 다시 공간 내에서 입체성을 지닌 하나의 오브제로 전환되어 비물질적인 감각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김미영의 작업은 언뜻 사진에 국한되기보다는 설치미술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니고 있는 시간성을 생각했을 때, 촬영 대상의 압축된 한순간을 담아내는 사진가로서 작가가 지니는 역할이 그의 작업에서 더욱 돋보이는 듯하다. (중략)
노시갑
노시갑 작가는 (대구, 1956) 오랜기간 동안 아날로그 사진을 해오면서 스스로를 둘러싼 삶의 일상성과 주변 풍경의 아우라를 필름을 통해서 표현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순수아날로그 기법에 의해 새롭게 표현된 아르누보 장르의 사진으로, 필름을 이용한 포토그램 표현법에 의해 집 가까이 있는 잡초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식물체을 대상으로 내면의 아름다움과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품이다. 작은 식물체들에서 마이크로의 아름다움과 조형성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를 형상화했으며, 유형학적 전시방법으로 이미지를 등가화하였다.
길을 걷다가 문득 발 아래를 본다. 보도블록 사이에 이름 모를 잡초들이 나있다. 세상일이 보통은 그렇지만, 일련의 작업은 이런 하찮은 관찰로부터 출발하였다. 잡초 같이 흔하디 흔하고 변변찮타고 생각하는 작은 식물들로부터 마크로적 아름다움과 균형잡힌 조형성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이 작업은 시작되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는 정말 하찮고 존재감 없는 그런 생명체들이다.
(중략)
이 잡초들도 뭇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천대 만 받는 하찮은 삶이 어쩌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풍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름도 잘 모르는 잡초들도 ‘소풍’ 와서 아름다운 작은 존재를 남기고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는 않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본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게 되었고, 어쩌면 인간도 하찮은 잡초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속 수많은 상념과 아름다운 소풍 같았던 한 세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박심정훈
박심정훈 작가는 규정되지 못한 것들이 이미지를 통해 정의해질 수 있음에 흥미를 가지고 작업을 이어간다. ≪Defunctionalization(2021), 아트숨비≫, ≪비공명 트로피(2020), 갤러리 아리아≫ 등의 개인전과 ≪나의 친애하는(2021), SeMA창고≫, ≪존재의 지형도: 관계와 얽힘들(2021),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외 다수의 단체전, ≪Welcome to ‘Jang-gu in the Club’(2021), ARS Electronica Garden Seoul 2021≫ 등의 공연을 진행하며, 사진의 관점을 통해 3D, 조각, 설치, 사운드, VR 퍼포먼스 등으로의 작업의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여러 관계들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만 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인지 고민했고, 세상의 여러 관계들에는 나만 모르는 어떤 규칙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규칙을 찾고 싶었기에 주변의 모든 것들을 주의 깊게 응시하고, 그것들의 이미지를 채집했다. 이후, 그것들이 엮어지며 형성해가는 관계들을 관찰하고 추적하며, 그 기준을 추측한다.
오철민
오철민(1969. 부산) 작가는 죽음과 부재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사진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이미지와 달리, 그 대상은 이미 부재하거나 죽음을 향해간다. 작가는 그 간극에서 사진의 의미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사진은 특히 죽음과 친밀하게 맞닿아 있는 예술 장치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의 기억과 느낌을 함께한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은미_隠味>는 내 특이한 욕망에 유일하게 부응한 배우자 은미를 바라보고 기록한 작업이다. 말하진 않지만 존재하고,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숨겨져 있는 사진 매체는 좀처럼 알기 어려운 은미를 설명하기에 적합했다.
(중략)
<은미_隠味>는 사진 매체가 ‘여기, 지금’을 묶어두는 것이고 과거의 기억과 느낌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현하기 불가능하기에 각 느낌을 강조하는 다양한 형식을 선택했다.
유병완
유병완 작가가 파킨슨 진단을 받은 후 삶을 대하는 태도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가이다.삶의 유한성을 상기시키고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봐야하는지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 속 시들어가는 피사체는 자신의 삶과 병, 본인 그 자체이다.
45세, 파킨슨. 갑자기 찾아온 이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 그렇지만, 나의 친구가 될 것 이였다. 왜... 하필 나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고통을 받는지 알 수 없었다. 술 없이는 견딜 수 없어 매일 술과 살았고 새벽 4시나 되어서 집에 들어갔다. 잠자고 있는 두 아이들을 볼 때 마다 흐르는 눈물이 가슴을 적셨다. 그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 십수 년이 되었다. 지금 내가 담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상해버린 야채와 과일은 나를 보는 것 같은 닮음을 찍고 있다. 썩어가고 있는 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윤보경
윤보경 작가(대구, 1995)는 재생산되는 비가시적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왜곡된 현상을 시각화한다. 2019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청년예술가선정 등 대구와 서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2018년부터 대구의 최대 집창촌인 자갈마당에 대해서 작업해왔다. 자갈마당의 철거 후 저의 작업은 부재와 실존 사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철거의 현장에 국한되어 있던 이전의 작업에서 벗어나 철거 이후 왜곡된 욕망들에 초점을 둔다.
(중략)
인간의 성마저 사고 파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기형성에 주목하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우리 곁에 있지만 볼 수 없는 세계들이 교묘하게 틈 사이에 숨겨져 왔다. 무형의 존재들을 파헤쳐 잔존하는 가상의 형상들을 발굴해내고자 한다.
한규옥
한규옥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한동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살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기반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감정 상태의 모호성 등을 자전적 기억 속에서 탐색하는 것에 있다. 자연 속 사물이 갖는 다른 물성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언어를 점차 추상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생각이 깊어지던 날이었다. 숲 주변을 따라 등 뒤로는 지는 해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서 달을 보았다.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잊혀지고 괜찮아질 거라는 헛된 기대가 태연스럽게 펼쳐 진다. 켜켜이 퇴적되어 있는 고통스러운 과거의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체 했을 뿐, 그 안의 공허는 지금이나 그 때나 다르지 않았다. 나조차도 속이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럴듯한 이유와 함께.
진실은 내가 그랬으면 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감정의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숨기려 하는 것에 더 많 은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뒤로 물러서서 가장 낯선 내 얼굴을 마주한다.
Woozi.P
Woozi.P 작가(대구, 1995)는 우리의 삶, 그 중에서도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작가는 사진과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방식을 매개로 하여 관객의 전시 참여를 유도하는데, 이를 통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현재 작가는 송전탑의 이미지와 조명을 설치하여 타인과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2015년 대구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의 작품을 알리고자 전시를 기획했으며, 해당 전시에 작가로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매해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는 작가는 2021년 대구예술발전소 작가 발굴프로젝트 <수창동 스핀오프>전에 참여하였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환경으로 개개인을 이룬다. 각자의 삶의 형태에 따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와의 관계를 맺고 있고 본인만의 형식으로 살아가는 듯하지만 모두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삶을 이루고 있다.
송전탑을 보면 우리의 삶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송전탑은 연결지어 분포하고, 얽혀있기도 하고, 환경에 따라 생김새, 높이, 형태가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전류를 송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과 조건이 달라도 전선을 따라 연결되어 있는 형태가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각기 다른 색을 가진 조명 또한 서로가 연결 지어 빛을 발하는 모습이 우리의 삶을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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