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TREAM>은 '새로움'이라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예술적 표현의 본질을 암시하는 반면, 'Stream' 안에 유동성, 연속성, 무한성의 의미를 담았다. 이 전시는 예술계에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새로운 흐름이 되고자 한다. 전시에 선정된 7명의 작가는 김영창, 박민우, 엄장훈, 우동윤, 오수정, 이하늘, 최근희이다. 이들은 익숙한 대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그 순간을 담는다. 그리고 예리한 관찰과 창의적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관객에게 전달함으로써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다.
김영창 Kim, Young-chang
기발한 방법으로 초상을 완성하여 다양한 사회 집단 내에 정체성과 소속감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
너는 알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지 어차피 우린 다른 이야기를 할 거거든
거의 구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밑 바닥과 꼭지 부분은 움푹 들어가서
위에서 보면 둥그런 원이지만 옆에서 보면 원의 위아래를 반듯이 잘라낸 모양을 하고 있고 아래의 사분의 일 지점은 노란빛이 있지만
나머지 사분의 삼 지점은 새빨간 사과를 이야기해도
너랑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할 거거든
물론 사과는 우리 앞에 있고 말이야
나는 그저 내가 본 사과를 보여줄 뿐이야
이건 나의 사과야
박민우 Park, Min-woo
1880년대의 유리건판 사진을 현대 유리건판으로 재촬영하여 사진의 진실성, 사실성,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디지털이미지의 편리함과는 달리 건판사진은 유제를 만들고 유리판에 유제를 도포하고 촬영 후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 인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 마주한다. 유제를 만들고 유리판에 도포하는 모든 과정이 오롯이 작업자의 노력과 숙련도에 따라 사진의 질이 달라질 수 있지만 촬영에서부터 전 과정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 유리건판의 매력이며 내가 유리건판으로 촬영하는 이유이다.
엄장훈 Eom, Jang-hoon
일상의 불안과 취약성을 포착하여 관람자 내면의 불완전함과 더 깊은 의미를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이 적막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다. 나의 불안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선명하진 않지만 직간접적으로 접한 사건들은 카메라를 통해 나의 숨겨진 이미지를 바라보게 한다.
나의 일상은 불안하고 불완전하기에 적막하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서로를 경계하며 불안이라는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모습이 불완전하게 보인다. 나의 일상이 온전하지 않기에 이 세계는 불완전하다.
오수정 Oh, Su-jung
인간의 본성과 개성에 대한 성찰의 상징적 오브제로써 돌을 두고 사유를 유도한다.
불분명하게 살아가는 것들 중에서 우리가 온전히 가진 것이라곤 자신의 몸뚱아리와 시간밖에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형화된 틀에서 살아가며 자신이 형태를 잊는다. 사회적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을 구분이 모호해지고, 기계적인 움직임들과 복제된 형상들에게서 회의감을 느끼며, 그것에 대한 탈피를 위해 온전히 나의 시간을 만들기로 한다.
우동윤 Woo, Dong-yoon
청년들의 자신감과 회복력을 기록하고 그들의 꿈과 열망을 응원하도록 한다.
취미로 자전거를 즐기던 때 자전거를 수리하기 위해 지인의 소개를 받아 한 청년을 찾아갔다. 5평 남짓한 조그만 자전거 공방을 혼자 운영하는 청년이었다. 자전거가 좋아서, 자전거에 미쳐서, 오직 자전거만 생각하는 청년을 보며 했던 생각은 ‘과연 돈이 될까’였다. 하지만 그 청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쳐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저렇게 열정적인 청년시절을 보냈었던가?’ 그 청년의 뜨거운 열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뜨겁게 살고 있는 대구의 청년들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해 보자고 생각했다. ‘대구청년보고서’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하늘 Lee, Ha-neul
사진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아저씨’라는 군집의 독특한 매력과 정체성을 호기심의 파인더로 바라보게 한다.
중년과 노년 사이 어디쯤의 남자를 기록한다. 흔히 한국에서 아저씨라 불리는 그들은‘호명’되는 순간 하나의 군집으로 형성된다. 아저씨는 명확하게 콕 집어 누구라고 말할 수 없는 폭넓은 집단의 사람들에게 붙여진 단어이다. 내가 바라본 그들은 어느 나이대의 사람들보다 자유롭고 자아를 투명하게 드러내며 타인의 시선에 거의 무관심하다. 아저씨라는 하나의 단어로 일반화하기엔 의외로 개성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최근희 Choe, Geun-hee
심상(心橡)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투영하며 그렇게 전달된 메시지는 관습적 사유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2021년 5월 13일. 드디어 마흔이 되었다. 혹독하게 아홉수를 보내고 나니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혼자 있는 것이 좋아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잡초에게 관심을 가진 건 올 초부터였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을 잡초라고 하는데, 내가 정의하는 잡초는 1. 이름 모를 2. 무관심한 3. 사람 손길이 닫지 않은 등, 사람들의 관심 밖의 식물로 그 모습이 나와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잡초의 이름, 쓰임 등을 알아감으로 시작되는 ‘나’와 ‘주변’ 알아가기, 즉 관계함에 대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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